여행

[치비타 디 바뇨레조] 사라지는 도시, 그러나 남아 있는 것들

에이메스 2025. 3. 2. 19:21

이탈리아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한 유명한 도시들이 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곳들. 하지만 이탈리아에는, 그런 대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이 흐르는 작은 마을도 있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Civita di Bagnoregio).

치비타 디 바뇨레조 풍경

 

바람과 침묵만이 남은 마을

치비타 디 바뇨레조는 ‘죽어가는 마을(La città che muore)’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마을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부드러운 화산성 응회암 지대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 몇백 년 전만 해도 큰 도시였지만, 지금은 단 몇 명의 주민만이 남아 있다.
 

도시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

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다리. 자동차도 다닐 수 없고, 오직 걸어서만 들어갈 수 있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입구를 지나면, 돌길과 중세 시대의 건물들, 그리고 아득한 고요함이 맞이한다. 이곳은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처럼 번잡한 관광지가 아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창문 틈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스쳐가고, 한적한 광장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햇살을 즐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 마을 들어와서 입구쪽을 바라본 모습
들어와서 입구쪽을 바라본 모습
마을 과장
광장
광장 고양이
광장 고양이

사라지는 것들이 남기는 것들

마을이 점점 무너져 간다고 해서 그 기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운명 때문에 이곳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때 사람들로 가득했던 거리를 걸으며, 그 시절의 소리와 풍경을 상상해 본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낮게 깔린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그러나 실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골목
사람이 살지않는 골목

여행자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이곳에서는 뭔가 거창한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느끼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몇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 산책하기: 차가 다닐 수 없는 도시에서 ‘걸음’이 곧 가장 완벽한 이동 수단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시 곳곳에 숨겨진 중세 시대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 현지 와인과 음식 맛보기: 이곳은 작은 마을이지만, 레스토랑에서는 토스카나 스타일의 와인을 맛볼 수 있다. 특히 펙오리노 치즈(Pecorino Cheese)와 곁들여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성당과 광장 방문: 마을 중심에는 작은 성당이 있다. 조용히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오랜 역사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
레스토랑
BAR

사라질 것이라서, 더 기억해야 할 곳

사라지는 것들은 흔히 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때로는 ‘곧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기억이 된다. 치비타 디 바뇨레조는 그런 곳이다. 언젠가 이 마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느낀 감정과 기억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마을을 떠나기 전,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을 느껴보자.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것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