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오르비에토 성당] 시간이 깃든 공간

에이메스 2025. 3. 2. 15:04

이탈리아의 작은 언덕 도시 오르비에토.
피렌체도 아니고 로마도 아닌 이곳에 발길을 멈춘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오르비에토 성당(Duomo di Orvieto).

오르비에토 성당

고딕 건축의 걸작, 그 앞에 서다

오르비에토 성당은 그 자체로 ‘압도’의 감각을 선사한다. 건물의 정면을 장식한 황금빛 모자이크, 정교하게 조각된 조각상들,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양식의 첨탑. 그것은 건축이 아니라 신앙이었고, 예술이었고, 시대를 뛰어넘은 인간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 성당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기적에서 시작된 성당이기 때문이다.

오르비에토 성당 전면 좌측에 있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 조각

한 장의 피 묻은 성작(聖爵)

1263년, 한 독일인 신부가 로마로 가던 중이었다. 그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할까? 그는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다 오르비에토 근처 보르세나(Bolsena)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그가 손에 든 성체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곧 교황 우르바노 4세에게 보고되었고, 교황은 이를 기리기 위해 오르비에토에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지금의 오르비에토 성당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우리가 지금도 알고 있는 성체 축일(Corpus Christi)의 기원이 되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곳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그곳은 또 다른 세계다. 푸른빛과 금빛이 교차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 어두운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는 빛의 조화. 성당의 벽과 천장에는 신앙의 서사가 담긴 프레스코화들이 남아 있다.
특히 성당 내 카펠라 누오바(Cappella Nuova)에 있는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의 ‘최후의 심판’ 벽화는 놓쳐서는 안 될 장면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전에 이 벽화를 보러 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오르비에토 성당 내부
내부 천장화

오르비에토에서 경험할 것들

오르비에토 성당만 보고 돌아선다면, 이 도시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이곳은 성당 외에도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다.

  • 산 파트리치오 우물(Pozzo di San Patrizio): 나선형 계단을 따라 62m 아래로 내려가면, 16세기에 만들어진 거대한 우물을 만날 수 있다.
  • 지하 도시 투어(Orvieto Underground): 오르비에토의 언덕 아래에는 고대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동굴과 통로가 숨겨져 있다.
  • 와인 한 잔과 트러플 요리: 오르비에토는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오르비에토 클래시코(Orvieto Classico) 한 잔과 트러플 요리가 여행을 더욱 완벽하게 만든다.

오르비에토 관광지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

오르비에토 성당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곳에 서면,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13세기의 신부가 가졌던 믿음과 의심, 그것이 만들어낸 성당, 그리고 지금 그 앞에 서 있는 우리.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의 감정과 고민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르비에토를 떠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한 번이라도 다녀간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시 오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