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펠탑] 철덩어리에서 세계적 아이콘이 되기까지

에이메스 2025. 3. 2. 14:12

에펠탑은 그 자체로 역설적인 존재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랜드마크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는 ‘파리의 수치’라 불렸다고 한다. 고전적 아름다움이 가득한 도시에 이질적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철구조물. 19세기 파리의 예술가들과 문인들은 이 ‘괴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에펠탑

기 드 모파상의 반항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을 그야말로 혐오했다. 하지만 그는 매주 에펠탑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지.”
 

철거될 운명이었던 탑

에펠탑은 원래 1889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임시 구조물이었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20년 후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구스타브 에펠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에펠탑의 과학적, 실용적 가치를 증명하고자 했고, 결국 무선 전신 기지국으로 활용되면서 철거 위기를 넘겼다.
어쩌면 이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낯설고 거부감을 느끼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필수적인 존재로 자리 잡는 것.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구스타브 에펠

히틀러도 오르지 못한 탑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는 순간 에펠탑의 엘리베이터 케이블을 잘라버렸다. 히틀러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그는 에펠탑 정상에 올라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 계단을 오르길 포기했다.
탑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프랑스인들에게 그것은 독일군이 절대 정복할 수 없는 정신적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4년 뒤, 파리가 해방되던 날, 에펠탑은 다시 활짝 빛을 내뿜었다.
 

에펠탑이 던지는 질문

처음엔 ‘도시의 흉물’이었던 에펠탑이 지금은 ‘프랑스의 상징’이 되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철탑을 올려다보며 감탄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낯설다는 이유로 어떤 것들을 너무 쉽게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에펠탑은 그 존재만으로도 묻고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변해가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본 에펠탑
에펠탑 야경